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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6시, 광안리에서 30대 중반 남성 손님을 태워 김해공항까지 모셨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중 그날 칠레로 출국한다는 말에 무슨 일이신지 여쭤봤는데, 짧은 이동 시간 동안 나눈 대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새벽 공항길이라 다들 말없이 창밖만 보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손님은 먼저 말을 건네주셨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까지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영어모임에서 시작된 도전
손님은 20대 시절 부산에서 영어모임에 적극참여했고, 거기서 만난 영국인 친구의 우연한 추천으로 영국 취업연수 비자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2년간 영국에서 일하며 공부할 수 있는 비자인데, 한 해 선발 인원이 천 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매우 받기 힘든 비자였다고 합니다. 평범한 20대 청년이 이런 좁은 문을 뚫고 영국행을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다른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정적인 국내 취업 대신 불확실한 해외 생활을 선택한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손님은 그때의 선택과 도전이 지금도 본인인생의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확신했습니다.
타지에서 버텨낸 2년
영국에서 지낸 2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현지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직원 식사로 나오는 스파게티에 유독 본인 것만 소스를 적게 주는 등의 은근한 차별이 있었고, 일부 손님들에게서는 모멸감을 주는 언행등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1년쯤 지나 그만둘 때에는 펍의 주인이 임금을 올려줄 테니 더 근무할 것을 제안할 정도로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언어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 틈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손님은 그 시절을 후회 없는 경험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다행히 도움을 준 영국인 친구의 런던근교의 부모님 댁에서 1년간 함께 지내며 정착할 수 있었고, 그 영국인 친구의 부모님과 함께 지낸 덕분에 빠르게 영어가 늘었고, 이후 LG 런던 지사에 직접 지원해 현지 채용으로 입사하여 영국과 한국을 오가는 수출입 업무를 맡으며 실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았다고 합니다. 그 손님은 또 그 영국인 부모님들은 자신의 친부모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본인결혼식 때 스코틀랜드분이신 그분들이 전통복장을 착용하시고 직접 한국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너무도 감동했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는 얘기에 인종차별도 있지만 참 좋은 분들도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더 배우기 위해 선택한 작은 회사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대기업인 LG를 떠나 규모가 작은 강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언젠가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최종 목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크고 안정적인 회사보다 작지만 다양한 업무를 직접 부딪히며 배울 수 있는 곳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대기업을 나와 작은 회사로 옮기는 게 의아해 보일 수 있지만, 스스로 정한 목표가 뚜렷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온라인 결제부터 국제 배송 물류까지 폭넓게 다루는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 칠레 출장도 코트라가 주최하는 대기업-중소기업 협업 세미나 참석 겸, 칠레 시장에 처음 도전해 보는 자리라고 합니다.
택시 안에서 만난 도전정신
새벽부터 공항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의 20대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안정적인 길 대신 매번 더 어려운 선택을 해온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전이라는 것이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결심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모임에서 만난 인연 하나가 영국 정착으로, 다시 대기업 입사로, 그리고 지금은 강소기업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까지 이어진 걸 보면,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뻗어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기업을 떠나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 저에게도, 이 손님의 이야기는 작지 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새벽 공항 가는 길, 짧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대화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