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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에서 만난 인연

 

어제 영도 산복도로 쪽에서 손님 한 분을 태웠습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셨는데,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예상치 못하게 그분의 지나온 인생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택시를 몰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손님과 나 사이에 아무 이해관계도 없다는 게 오히려 편해서인지, 평소엔 누구에게도 못 했을 얘기를 꺼내놓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날이 딱 그랬습니다.

 


이른 결혼, 그리고 이별

 

할머니는 젊은 시절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으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잦은 외도와 부재로 결국 갈라서게 됐고, 당시 경제적으로 자립할 형편이 안 됐던 할머니는 아이들을 남편 쪽에 보내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지"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목소리에 아직도 그 시절의 무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주에서 시작된 화려한 시절

 

혼자가 된 할머니는 지인의 소개로 고향 부산을 떠나 제주로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유흥업소의 주방일 일을 시작하셨는데, 미모와 수완이 남달랐던 덕분인지 유흥업소 사장의 강력한 권유로 직접 손님 접대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미모덕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나중에는 본인 명의로 가게를 낼 정도로 큰돈을 버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땐 정말 잘 나갔지, 돈이 돈 같지가 않았어"라는 말씀에서 그 시절의 화려함이 언뜻 스쳤습니다.

 


너무 일찍 찾아온 돈, 그리고 도박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큰돈을 쥐게 된 할머니는 씀씀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도박에 손을 대셨다고 합니다. 도박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빌려주다시피 하셨는데, 돌아보면 그 사람들 대부분이 할머니의 재산을 보고 접근했던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금전적인 손실이 있었고, 정작 힘들 때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고 쓸쓸하게 말씀하시더군요.

 


홀로 돌아온 고향

 

그렇게 모든 걸 잃고 고향 영도로 돌아오신 게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잘 나가던 젊은 시절 키우지 못한 미안함으로 아들들에게는 아낌없이 지원했었지만, 키운정이 없어서 인지 자식들과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채고, 지금은 여기저기 편찮으신 몸을 이끌고 정부 지원금에 기대어 근근이 지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 많던 돈 다 어디로 갔나 몰라"라며 웃으시는데, 그 웃음이 오히려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자식들 얘기를 하실 때는 "다 소용없더라"는 한마디로 서운함을 대신하셨습니다.

 


외로움에 관한 생각

 

목적지에 도착해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뒷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이혼, 맨몸으로 시작해 손에 쥔 큰돈, 그리고 그 돈과 함께 사라져 버린 사람들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많은 굴곡이 담길 수 있다는 게, 그리고 그 굴곡의 끝이 이렇게 쓸쓸할 수 있다는 게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노년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노년의 힘듦의 가장 큰 원인이 외로움이라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느냐가 삶의 질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며

 

택시를 몰다 보면 부산의 지리나 맛집, 꿀팁 같은 것만큼이나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만납니다. 오늘은 그중 하나를 옮겨봤습니다. 화려했던 시절도, 지금의 쓸쓸함도 다 그분의 인생이었겠지만, 부디 남은 시간은 조금이라도 편안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