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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30분, 아직 도심의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시각에 핸들을 잡았습니다. 미터기를 켜고 손님을 모신 곳은 김해국제공항.

뒷좌석에 탑승하신 65세 남짓의 여성 손님은 커다란 캐리어와 함께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계모임을 함께해 온 친한 친구들과 함께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연변을 거쳐 백두산 관광을 떠나시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여느 때처럼 평범하고 정겨운 공항행 손님과의 대화로 시작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제 가슴속에는 묵직한 여운과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던 날, 그리고 3개월마다 찾아오는 공포


손님은 4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절제 수술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처음 암이라는 진단을 받던 날,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고 세상이 온통 아득해졌다고 당시를 회상하셨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완치 판정이 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정기 검사를 받고 계시는데, 지금도 검사 전날 밤이 되면 혹시나 재발했을까 봐 온몸이 떨리고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님은 병마에 굴복해 집에만 갇혀 계시지 않았습니다. 수술 후 몸 상태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자마자 등산화를 신었고, 가방을 싸 들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돈도, 자식도, 남편도 보이지 않던 순간의 깨달음

 

손님께서 던진 한마디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제 가슴을 쿵 하고 때렸습니다.

"큰 병에 걸리고 나니까요 기사님, 돈도 자식도 남편도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리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지나온 과거가 너무나 후회스러웠다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죽음이라는 단어가 점차 가까워지고,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재산도, 명예도 결국 한 손의 흙으로 돌아갈 부질없는 것들임을 뼈저리게 느끼셨다고 합니다.

손님은 결심하셨습니다. '죽기 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여행이나 실컷 하고 가자.'

마침 어릴 적 친구들과 수십 년간 묵묵히 모아 온 곗돈이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수술 후 지난 3년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부터 미국, 캐나다 등 북미, 동남아시아, 하와이, 괌까지 발길이 닿는 대로 세상을 누비셨고, 이번 백두산 여행 이후의 다음 목표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라며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셨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남김없이 베풀고 누리는 삶


손님은 스스로를 부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남은 삶 동안 가진 돈 아끼지 않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껏 베풀며 살고 싶다고 웃으셨습니다.

김해공항 트래픽을 지나 손님을 무사히 내려드리고 돌아오는 길, 비어있는 뒷좌석을 백미러로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오늘 하루도 타인과 경쟁하고, 나중으로 행복을 미루며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정작 내 몸이 아프고 삶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내 손에 쥐어질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눈 추억과 행복했던 순간들'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도로 위에서 배우는 인생의 이치


택시라는 작은 공간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가 스쳐 지나가는 소우주와도 같습니다. 오늘 새벽 손님이 건넨 삶의 통찰은 매일 복잡한 도로 위에서 생계를 위해 달리는 저에게도 소중한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오늘도 내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으려 합니다.

백두산으로 떠나신 손님께서 부디 이번 여행도 친구분들과 안전하고 행복하게 다녀오시기를, 그리고 3개월 뒤 찾아올 정기 검사에서도 기분 좋은 완치 소식을 들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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